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을까.아주 희귀한 감자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 외에는 반드시 학교급식이나 가정식탁에서 먹어봤을 것이다.
저먼 포테이토나 포토프 등과 같이 해외에서도 감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세계 4대 작물로도 선정될 만큼 초메이저 작물인 감자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이 있었다.이번 잡학에서는 그런 감자의 역사를 풀어나가자!
[재미있는 잡학] 감자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잡학 해설] 감자 고난의 역사
때는 기원전. 멀리 떨어진 안데스 산맥 백성들은 감자 야생종을 발견한다.
안데스 백성들은 소라닌이라는 독성이 강했던 당시 감자를 궁리해 먹을 수 있게 해 잉카제국의 식량원으로 삼았다.
그러나 운명인 1533년 200여 명의 병사와 함께 남미에 상륙한 스페인 피사로가 싸움을 걸어왔다.300명도 안 되는 상륙자들이었지만 기마병·철제 무기·갑주·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구리 무기만 가진 잉카 측은 2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왕도 처형되었던 것이다.
유럽으로 건너간 감자
남미에서 들여온 감자는 처음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면서 관상용으로 귀족들에게 침투했다.
그러나 식용 감자의 평판은 형편없었다.당시 교회는 성경에 실려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감자를 악마의 뿌리라고 불렀다.감자를 온갖 전염병의 원인으로 삼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임신한 여성은 감자 금지, 가족이 감자를 먹고 있는 아동과의 동석 거부 등도 일어났다.감자가 인간이었다면 세 번은 정신이 무너졌을 너무 심한 취급이다.
이유는 몇 가지다.그것은 당시 감자가 별로 맛이 없었던 것, 감자의 맛있는 조리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감자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솔라닌’에 의한 중독이 많이 발생한 것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