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잡학①] 감자가 세계로 보급될 때까지
감자가 세계로 보급될 때까지 트리비아
심하게 유럽에서 미움을 받았던 감자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먹을 수 있다.
여기서는 어떻게 보급되었는지를 소개한다.
독일에서의 감자 보급
17세기 말경 독일 동부 포클란트 지방·서남부 파르츠 지방에서의 재배가 시작되었다.이들 지역은 산이 많고 땅이 말라 냉량한 지역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감자가 다른 지역보다 빨리 보급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마른 땅에서 만들어지는 감자를 다른 농민들은 가난뱅이들이 만드는 가난 작물이라고 조롱했다.풍평 피해로 감자는 좀처럼 독일 전역에 보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거듭된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황폐 속에서 독일 농지는 황폐해졌다.그런 가운데 단기간에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감자는 독일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작물이었다.
그래서 당시 권력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령을 내려 감자 보급에 힘썼다.또 그는 감자밭에 삼엄한 경비를 세워 마치 귀중한 작물인 것처럼 취급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농민들은 밤마다 그 작물을 훔쳐내 자신의 밭에 심었던 것이다.이렇게 감자는 전국에 보급되어 갔다.
감자 재배를 위한 새끼 손가락바늘이라는 책자를 펴낸 필립 에른스트 류더스라는 인물은 책자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다.여기에는 감자의 기본적인 정보가 실려 있어 적어도 싹과 줄기에 중독되는 사고는 급감했을 것이다.
이어 1780년대에는 감자요리 레시피와 감자역병 대책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책자가 만들어졌다.프리드리히 대왕의 공적보다 오히려 이들의 꾸준한 노력에 따른 공적이 더 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프랑스 파르망티에 노력의 감자
프랑스, 파르망티에 노력의 감자에 대한 트리비아
파르망티에
프랑스에서 감자는 돼지의 먹이로 여겨졌다.지방회의에서 감자를 늘리는 것을 금지하는 판결도 있어, 여기서도 상당한 감자는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욕으로 너 감자(돼지 먹이)나 먹어라!는 식으로 쓰였을까.돼지의 먹이 호칭은 역시 너무해…!
그러던 중 1769년, 1771년 연달아 대흉작이 발생한다.
그래서 감자 재배를 제안한 사람이 농학자 파르망티에라는 인물이다.그는 포로 시절 식량으로 감자를 먹고 핑핑하는 것으로 보아 감자의 효과를 몸소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감자 보급에 전력을 다한 파르망티에의 이름은 현대 파리 지하철 역명이 됐다.더불어 ‘파르망티에풍 오믈렛’ 등과 같이 ‘감자풍’이라는 뜻으로 그의 이름은 다양한 프랑스 요리에 사용되고 있다.
재빨리 감자를 도입한 아일랜드. 하지만…
한랭하고 마른 땅이 많은 아일랜드는 영국으로의 식량 수출을 위한 농지로 이용되고 있었다.그래서 비교적 부유한 땅은 모두 영국 수출용으로 사용되었고, 그곳에서는 고기나 버터로 만들기 위한 소들이 주로 길러졌다.
마른 땅밖에 이용할 수 없는 농민들은 생명력이 강하고 추위에 강한 감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것들이 후일 비극의 원인이 된다.
1840년대에 발생한 감자 역병으로 무려 90%의 감자가 수확 불가능에 빠지고 만다.이로 인해 아일랜드는 심각한 기근에 빠진다.남겨진 아일랜드에서의 귀중한 식량인 소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무려 계속해서 영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 수출은 기근 속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이게 무슨 소리냐…
이 기근으로 인구 800만 명이던 아일랜드에서 무려 200만 명이 기아와 국외 탈출로 사라졌다.나고야나 삿포로가 거의 통째로 사라질 정도다.규모가 너무 큰…그 후 1세기 동안 아일랜드 인구는 계속 줄어 현재 아일랜드 인구는 5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추가잡학③] 안데스 백성의 감자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의 궁리
당시 안데스인들은 감자의 ‘솔라닌’이라는 독성으로 식량원으로 삼을 수 없었다.그러나, 여러가지 궁리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우선 현지인들은 안데스의 기후를 이용했다.영하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 감자를 얼리고, 해가 뜨면 이를 햇빛에 쬐어 얼음을 녹이고, 다시 밤이 되면 얼려를 반복했다.
빙결과 융해를 반복하여 충분히 불어난 감자를 으깨어 간다.그렇게 함으로써 수분과 함께 유독물질인 솔라닌을 풀어 독을 제거한 것이다.마무리로 그것을 햇볕에 말려서 충분히 건조시켰다.
이 보존식은 츄뇨라고 불리며 잉카제국 사람들의 소중한 식량원이 되었다.
정리
고생인…! 감자에는 전 세계적으로 미움받았던 역사가 있다는 트리비아 정리
감자의 역사를 소개해 왔는데 어떠했을까.웅장한 여행 속에서 감자는 많은 어려움을 딛고 현재의 지위를 확립했다.
나는 몇 번 맞아도 주저앉지 않는 마음을 감자정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든다.감자처럼 생김새가 다소 나빠도 영양 만점인 인간으로 나도 되고 싶다.
맞다 오늘은 감자 먹자.